집이라 하면 육면체에 박공지붕을 얹은 오각의 단면을 떠올리듯이, 협소주택이라 하면 정북일조 함수(y=2X, 단 y≦9일 때 x=1.5)가 만들어낸 그래프의 형상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주거지역의 모든 건물이 그러하지만 한 치의 공간도 아쉬운 협소주택이라면, 제도가 만들어낸 오롯한 형상에서 무엇인가를 덜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대지가 위치한 곳은 60-70년대에 형성된 주택가 골목의 끝자락이다. 주변의 이웃들은 정북일조 함수의 이격거리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서로 이마를 바짝 맞대고 서 있다. 이러한 환경을 딛고, 한 대가족이 가족 구성원 안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따로 또 같이’는 이곳의 숙제가 되었다.
주택가 골목 안 작은 터에 자리를 내린 가족이 있다. 아마도 이 터에서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한껏 누리며 자라났으리라. 그 자식은 자라서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어, 삼대의 가족이 다시 이 터에 모인다. 협소주택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부부나 싱글인 것을 감안하면, 자그마치 일곱 식구의 한 집살이는 조금 더 본질적인 ‘협소’주택이 된다. 대가족 안에서 가족 구성원 간의 긴장은 주택을 세분화하고 협소화 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각 구성원의 심리적 필요 영역은 물리적 공간으로 구획된다. 개개인의 버블을 한데 모아 정북일조의 함수 안에 밀어 넣고, 여행가방에 넣는 파우치처럼 분류하고 압축하여 빈틈없이 차곡차곡 채워 담는다. 집 가운데를 관통하는 중정과 슬라브를 오픈하여 만든 높은 층고의 공간조차도 사실은 ‘비워냄’을 꾹꾹 눌러 채워 담은 것일 지도 모른다.
서로 이마를 바짝 맞댄 주변의 이웃들은 거리낌 없이 사방으로 창을 냈다. 나중에 들어선 집들은 어쩔 수 없이 창마다 차면시설을 덮어 강제로 눈을 감게 하는 와중에도 집안에는 햇살이 머물기를 바란다. 대지의 남쪽은 옆집과 바짝 붙어있어, 깊은 우물처럼 햇살이 전혀 들지 못한다. 거기에 차면시설까지 덧씌워야 할 터이니 기능을 하지 못하는 창이 된다. 오히려 옆집과 얼마간의 이격이 가능한 북측으로 창을 내고, 서너 발짝 즈음 물러난 바깥으로 벽돌을 엇갈려 쌓아올려 이웃과 내 가족 사이에 한 켜의 필터를 만든다. 내 집의 입면은 이웃의 창 밖 풍경이기도 하기에, 부드럽게 벽돌로 모자이크 처리 된 시선으로 서로의 관계를 다독여본다.
집 한 가운데, 영롱 쌓기의 켜와 맞닿은 곳에 자그마한 중정을 두었다. 팍팍한 평면을 비집고 켜와 중정으로 틈을 벌리고, 이를 기준으로 한쪽으로는 개인의 공간을 다른 한쪽으로는 가족의 공간을 쌓아올린다. 각 공간은 벌어진 틈을 향해 숨을 내쉬면서도 구성원간의 시선이 겹치지 않도록 (혹은 겹치도록) 각 영역마다 그 높이와 위치를 조금씩 조정한다. 공용 공간은 영롱 쌓기의 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반면, 개인 공간은 켜를 측면에서 비스듬히 마주한다. 영롱 쌓기의 벽돌은 그 두께로 인해 투과율을 달리하는데 덕분에 거실에서는 아른아른 보이는 이웃의 풍경이 침실에서는 온전히 차단되고 중정과 켜 사이의 공간으로 반사되는 부드러운 햇살만 남게 된다.